2008/09/28
[후기] 수락산 등산
등산코스: 수락역 - 1 봉 - 2 봉 - 3 봉 - 독수리 바위 - 최고봉 - 기차바위 - 계곡 - 절 - 장암역
[개으른 시작]
역시나 요즘은 지독스러운 개으름에 걸렸다.
습관적으로 다음날 새벽 2시에 잠들고,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겨워하는, 그리곤 30분만 더 하고 알람을 다시 맞춰놓고 눈을 붙이는 센스까지.
예전에 바른 생활 사나이는 어디로 갔을꼬…….
[길 잃은 강아지]
힘겹게 8:30 에 일어나 등산 분비를 한다.
손수 담근 피클과 책한 권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9:30 에 한일타운 앞에서 보기로 했다.
10분쯤 일찍 나가 전화를 해보지만, 받지 않으신다.
어제 약주 하시고 뻗으셨나? 홈플러스 사거리까지 쭉 걸어갔다가 쉬엄쉬엄 다시 돌아오는 동안도 연락이 없다.
그런데, 날씬한 강아지 한마리가 짜라 뒤를 졸졸 따른다.
혹시 주인이 그 뒤에 섰나? 돌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시험 삼아 잠시 멈춰서 봤더니, 역시나 따라 멈춘다.
길 잃은 강아지.
일단 약속이 깨졌다 생각하고 길을 건너 집으로 올 때 까지 따라오면, 집에 대려다 놓고 주인 찾아줄 방도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다행이 뻗진 않으셨나보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홈플러스 앞에서 부사장님을 만났다.
아직 강아지는 뒤를 쫒고 있다.
차라리 야속이 흐지부지 됐으면 집으로 돌아가 돌봐 줬을 탠데, 이렇게 되고 보니 길 잃은 강아지가 불쌍해진다.
산에 가는데 데려갈 수도 없고…….
강아지를 때기위해서 뒤로 돌아보며, '저리가!'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러고도 계속 따라오더니, 버스 정류소에 도착할 즘 돌아보니, 다른 데로 가벼렸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수락한 으로]
지난주엔 도봉산이나, 청계산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수락산으로 가자고 하셨다.
수락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7770으로 사당에 가서, 4호선을 타고, 마지막에 7오선으로 갈아타고, 수락 역에 내렸다.
수락산은 초입에 좌판을 벌리고, 술을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그렇게 나쁘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산 초입을 지나, 산행이 시작되고도 30분쯤 오른 시점에도 술을 파는 집들이 간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와 그러고 싶을 까 생각이 든다.
[수락한 입구]
11:30
수락산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일행을 기다리는 인파들이, 몇 개의 그룹을 형성하고 서있다.
산으로 오르는 동안 앞 사람들의 엉덩이만 쳐다보며 지난주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어젠, 술도 안 드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고 했다.
지난주에 고생하신 것도 있고, 오늘이 무척 기다려 지신 것도 있어서,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인다.
30분쯤 오르자 약간 가파른 바위 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앉아, 전망 트인 저 멀리를 내다보고 있다.
짜라도 비탈진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전망이 보이는 오른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다.
저 멀리 산자락에서 북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주말에 자신이 꿈꾸는 무대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나…….
물 한 모금에 더위를 쫓는다.
날씨는 무척 쾌청하다.
해도 뜨지 않고, 선선한 바람이 간간히 땀을 식히고 있다.
[첫 번째 봉우리]
다시 오르기를 30분 첫 번째 봉우리에 다다랐다.
마주보이는 곳에, 아까보다 더 넓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작은 물통의 물을 적당히 마시고, 커피믹스를 넣고 흔들어서 냉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아직은 우리가 목표로 한 수락한 정상이 보이진 않는 듯하다.
[두 번째 봉우리]
두 번째 봉우리는 내리막이 약간 있을 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봉우리 위에는 '노원구'에서 지어놓은 정자가 아주 멋지게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엔 '김시습'이 수락산에서 지은 듯 한 시들이 여러 편 책을 펼쳐놓은 나무 표지판에 새겨져 있었다.
짜라에게도 언젠가 그런 영광이 찾아올까 생각하며, 몇 줄을 읽어 내려갔다.
[세 번째 봉우리]
세 번째 봉우리가 있고 깔딱고개가 있었는지, 그전에 깔딱고개가 있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최고봉과 두 번째 봉우리 사이에 깔딱고개라는 어느 산에나 있는 비탈길이 만나는 길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들로 분주한 전경이 펼쳐졌다.
수락산은 지난주에 올랐었던 북한산만큼이나 암벽들이 간간히 나타났는데, 난코스라고 생각되는 곳마다, 밧줄이 드리워져 있고, 또 나무계단이 바위를 돌아 위로 쭉 뻗어 있어, 무척 편안하게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무척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반대로, 북한산만큼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 아쉬운 듯 서운한 감도 조금 남았다.
사람이란 참 희한한 동물이다.
위험할 때는 위험하다고 불평하면서,
안전해도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으니 말이다.
지나는 길에 독수리 바위가 있다.
옆모습이 마치 독수리가 앉아 쉬고 있는 형상이다.
정면에서 보면 독수리가 저 멀리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오르던 어느 중턱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곳은 좌우에 바위가 비탈을 이루며 솟아있고, 그 사이에 1m x 1.5m 되는 평지가 있었다.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
소나무 그림자가 기분마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부사장님이 준비해온 밥, 반찬들이 차려지고, 작은 컵라면에 열기를 머금은 물을 붓는다.
산에서 된장에 찍어먹는 청양고추 맛은 일품이다.
그 매운맛에 눈물이 핑 돌고, 정신이 번쩍 든다.
누가 다 먹었는지, 한공기도 더 되는 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청양고추, 1/4조각난 오이, 김치, 총각김치, 계란말이, 두부부침.
모두 부사장님이 준비해 오셨다.
짜라는 짜라표 스페셜 피클만 준비해 왔다.
역시나 산에 오를 때, 짜라의 준비물은 서툴고 어설프다.
그 많은 반찬과 밥 거기다 라면 까지 깨끗이 다 먹었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나무그늘에 등을 누이고 다리를 쭉 뻗었다.
발이 비탈진 바위에 비스듬히 놓여졌다.
그 위로 햇살이 비쳐든다.
소나무가 그 주위 대부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발을 뻗은 그 바위만큼은 햇살이 비쳐 들었다.
다리에 쏟아지는 햇살이 따스함과, 나무그늘의 시원함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엄청난 양의 점심식사였기에, 배가 남산 만해 졌다.
[수락한 최고봉]
최고봉으로 오르는 길은 거대한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느낌이다.
역시 오르는 길에 나무개단이 놓여있고,
그 이전에 사람들이 애용했던, 암벽 틈에 의지해 오르는 길도 있다.
우리는 암벽 틈에 달라붙어 기어오르기로 하고, 조금은 위험할지 모르지만 산에 온 맛을 느끼기로 했다.
바위에 기어올라 보니, 그 꼭대기에 어느 부부가 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려고 안정 장치들을 점거하고 있다.
20m는 되어 보이는 그 높이에 밧줄을 아래로 드리우고는 내려설 준비를 한다.
짜라는 그 밑에 뭐가 보이나 보려고 살금살금 내려다보려다 덜컥 겁이나, 그만 두었다.
부부는 익숙한 동작으로 느긋하게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점검을 했다.
뒤에서 부사장님이 오라고 재촉 하셨다.
바로 눈앞이 정상이었다.
짜라는 받줄을 잡고 내려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돌아 섰다.
정상에는 사람들의 물결이 춤을 추고 있다.
저마다 오늘을 기념하기에 바빴다.
산악회들이 5명 10명씩 모여서는 왁자하게 떠들며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왠지 그렇게 떠들고 들떠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저속에 짜라가 포함됐다면, 짜라도 그랬겠지만 타인으로 보는 그들은 그저 경거망동하는 무뢰배로 보였다.
정상엔 태극기가 늘어져 있다.
늘어진 태극기 한쪽 끝을 잡고 포즈를 취한 등산객이 사진을 찍는다.
태극기 옆으로 2.5m 높이의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또 1.7m 높이정도 솟은 바위가 2m^2 넓이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힘겹게 그 위로 기어올랐다. 위에서 맑은 하늘과 병풍 같은 산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작 높은 바위위엔 측량 기준으로 사용되는 정사각형의 돌이 박혀 있다.
'회손 금지, 국가중요시설'
이란 경고문구가 써져있다.
우리가 산을 오르듯이, 그 높은 바위위에 갈색 나무벌레가 앉아 있다.
어느 순간 그놈이 왼쪽 팔위로 기어올라 옷자락을 부여잡고 늘어졌다.
처음엔 따끔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살살 팔을 흔들어 보았지만 놈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사장님이 모자를 벗어 살짝 쳐 떨어뜨렸다.
잠시 후 그놈은 바위 난간에 막 비행을 하려는 것처럼 모서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있다.
그 녀석이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놀라 달아나긴 커녕, 사람에게 기어오르는 모습이 겁 없는 짜라를 생각나게 했다.
약간은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느릿느릿한 게, 어쩌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꼭한 번 정상에 오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장산역으로 하산]
능선을 따라 하산하는 코스로 접어들었다.
가는 길엔 평지가 꽤 많았는데, 그곳에는 소풍 나온 가족들이 돗자리 깔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앉아 산을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을듯하다.
10분쯤 걸었을까, 4갈래 갈림길이 나타났다.
사장님은 왼쪽이 장암역 가는 길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왼쪽이 아니고 앞으로 쭉 가면 기차바위를 지나서 장암역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방향 모두가 장암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단 우리는 기차바위도 볼 겸 계속 직진하기로 했다.
[기차바위를 자나며]
기차바위는 75도 경사를 이루며 깎아지는 절벽이었다.
폭이 5~6m 정도 되고 길이만 20m 쯤 될 것 같았다.
좌우로 굵은 줄이 두개 드리워져 있다.
이쪽으론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듯 했다.
우리는 밧줄을 하나씩 잡고, 하늘을 향해 서서 천천히 내려간다.
조금 내려갔을 즘, 다른 등산객이 위쪽에 나타났다.
그리고 한 등산객(1)이 내려서기 시작한다.
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등산객(2)이 그렇게 내려가면 재미없지 하면서 밧줄 잡지 말고, 작게 파여진 홈에 발과 손을 디디며 내려가라고 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인 줄 알았는데, 짜라가 다 내려 설쯤 등산객(2)은 정말 밧줄을 잡지 않고, 작은 홈에 의지해 암벽에 달라붙어 조심스레 내러온다.
저 멀리에서 보이지도 앉는 헬리콥터 소리가 여운을 만들고 있다.
또 누군가 긴급한 상황에 빠졌나보다.
단풍철이 다가 오고 있으니, 조급한 등산객들은 벌써부터 혹시나 첫 번째 단풍 소식을 접할까 서두르다 조난당한 모양이다.
벌써 4번째 듣는 헬기 소리다.
오늘은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조난을 당한 모양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산을 내려와 알게 되었지만, 꽤 많은 가을 등산객들이 다쳤다는 뉴스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 우리는 별다른 변을 당하지 않았다.
단지, 점심때 너무 많은 밥을 먹어 배 터져 죽을 뻔 한 것을 뺀다면 말이다.
배 터져 119를 부르면, 그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심각한 상황이겠지만, 실소가 터져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계곡을 따라 가로질러]
기차바위를 내려서면서 부터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졌다.
20분쯤 내려가자,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이 왼쪽에 나타났다.
좀 더 내려가니, 길이 계곡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지던 길이 이번엔 다시 계곡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그러길 두 번쯤 반복하자, 넓은 계곡이 나타나고 넓은 바위가 펼쳐졌다.
작은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뻗은 바위는 멋진 장관을 이루었다.
바위위로 계곡에서 보이지 않던 물줄기가 소심하게 흘려 내리고 있다.
바위 중턱 즘에 가방을 벗어놓고 드러누웠다.
바위의 시원함이 등을 타고 몸에 전해졌다.
누워 잠을 청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산을 내려가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산아.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그 산에 오르고, 내린다.
산에서 무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저 산이 '나'를 부른다,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고 있다.
이유도 없고, 쓸 대도 업이, 헛되이 에너지를 소모하려 산에 오르는가.
사람들은 산에 오면 좋은 논리적인, 감상적인 이유들을 100가지도 넘게 풀어 놓는다.
그 모든 것들이 이유일 것이다.
산을 다 내려오니, 등산로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오만한 인간들은 자연을 보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인간이 보호 할 수 있을 만큼 나약하지 아니하다.
그저 어떻게 하나 두고 볼 뿐이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으면, 모든 인간들을 한 번에 싹 쓸어버릴 것이다.
인간들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다.
계속 이렇게 탕진을 하고 회손 하다간, 사람이 살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연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감춰진 '인간보호'를 소리 높여 호소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그나마 조금씩 진실을 직시하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 이전엔 '자연보호' 딱 네 글자만을 걸었으니 말이다.
소심하지만 이젠 '인간보호'도 함께 적혀있다.
언제쯤이면 인간들은 그 오만함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17:30
[오늘을 반성하며]
요즘은 산 탄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있다.
9월엔 5권 읽었다. 그중 무협이 두 권이니 쪼금 껄적지근 하다.
한 두 권 더 읽고 넘어가야 하는데, 2일 남았다.
하루에 한권씩 소설로 때워 보까나…….
그래도 9월에 가장 큰 소득은 등산을 하며 성숙한 '자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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